3년후 세계는 그리고 한국은…

 3년후 세계는 그리고 한국은… 공병호

 

 아직 다 읽지 못하고 반쯤 읽었다. 그러나 너무나 깊이 공감하는 구절이 있어서 적어둘려고 한다.

몇몇 문장을 발췌하고 이해하기 쉽게 재배열했다.

 

 일자리 창출은 경제성장의 결과일 뿐이다. 바꿔 말해서 경제성장이 일자리 창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장률이 높으면 생산과 투자가 늘고, 이에 따라 고용은 자동으로 늘어난다는 경제 철칙을 위배하면 결과는 비참하다.

 

그런데 자칫 일자리 창출이란 문제가 정치인들에 의해서 왜곡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높다. 이로 인해 경제성장의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아니라 일자리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정책이 향할 때는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경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시중의 아우성에 정치인들은 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재정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글은 2008년 11월에 출간이 되었지만, 실제로 저술은 2005~2007년 사이인듯으로 보인다. 2003년 부터의 투입된 금액역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필자는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의 현실에도 포함된다. 방송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미디어법”, 결국 이것은 일자리 창출효과는 부수적이었고, 여론 독과점 해소가 주 이유다라고, 말이 바뀌었다. 그리고, “삽질 운하 문제” , 이 부분들이 위에서 말하는 경제성장의 결과물이 아니라, 재정 지원을 통해 일자리 자체를 만들어내는 대규모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 이런 전시성 예산 규모가 팽창될 가능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농후하다. 관료나 정치가들에게는 일단 무엇인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위의 큰 문장이 오늘의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것은 비롯, 정치 후진국이 아니라, 선진국도 마찬가지이다.

 

이 점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실패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는 1992년부터 대대적인 규모로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인 “MEGA-ABM”을, 그리고 프랑스는 1996년 ‘로비앙 법’을 제정해서 ‘일자리 나누기’ 프로젝트를 국가 차원에서 실실해왔다. 두 나라 사례를 분석한 최용식 씨는 “독일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는 실업률을 떨어뜨리기는커녕 오히려 상승시켰고 프랑스의 일자리 나누기 역시 실패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최소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장의 콘텐츠 없는 일자리는 재앙이다.” 라고 주장한다. 이런 프로젝트를 실시하기 이전이라도 이미 그 실패는 충분히 예견하고도 남을 일이다.. 수요가 없는 곳에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낸 일자리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겠는가? 예산이 투입되는 동안만 반짝 시행되다 마는 일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왜 이럴까? 간단하다. 산업이 선진국화 또는 고도화 될 수록, 사람의 능력을 단순히 나눠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진다. 천재 수준의 프로그래머 한명과, 그 절반 수준의 프로그래머 두 명을 쓰는 것, 어느 쪽이 더 생산성이 높고 효율적일까?

 

 실제로 일자리를 나누는 것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에는 확실히 어울리는 해결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노동집약형 산업은 해외로 나가고, 지식집약형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오마바 대통령은, 신 뉴딜 정책의 초점이 위에서 말한 “성장의 콘텐츠” 와 연관이 있는 부분으로 연결할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인위적으로 단순히 노동집약형 일자리를 늘리면 단시간은 좋겠지만, 우리보다 훨씬 싼 인건비의 외국에 결국 먹힐 수 밖에 없다.